궁궐들을 찾아 다녔지만, 나는 문화유산에 대한 현장 학습이 아니라 하루 놀러 가는 기분으로 참여한 그저 그런 학생이었기 때문에 시작부터 벽에 부딪힌 기분이었다. 그후로도 오랜 시간동안 고민을 하다가 창경궁을 공부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참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일제 강점기 때 창경궁의 건물 대부분이 헐려나가 아직도 비어 있는 공간이 많다. 장조(사도세자, 정조에 의해 추숭됨), 정조, 순조, 헌종을 비롯해 많은 왕들이 이 곳에서 태어났으며, 조선시대 궁궐의 역사를 알아보는 데에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다른 조선 시대 궁궐들이 그랬듯, 창경궁 또한 조선의
조선 초에 지어진 궁궐은 여러번의 전란 속에서 소실되었고 폐허로 남아있다가 다시 재건하는 역사를 지녔다. 이 과정에서 아름다웠던 건축물도 사라져 이제는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또한 창경궁은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변해 창경원이 되고, 일제강점기때 조선 총독부가 세워져 경복궁을 헤치
Ⅰ. 서론
600여년간 수도로서 긴 세월의 역사를 지니고 천만의 시민을 품은 국가운영의 중심적 발원체인 서울을 중심으로 한 궁궐은 세계유산의 문화재적 가치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고 있는 정신세계적 철학의 우수성을 세계적인 역사문화명소로 끌어내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여기에 풍수지리학
궁궐이다. 이 궁은 조선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임금들이 거한 궁궐이다. 여러 임금이 경복궁을 기피하였기 때문이었다. 임진왜란으로 서울에 있는 모든 궁궐이 불타버리게 되고, 이후 수차례에 걸쳐 재건 작업이 진행되었다. 광해군2년(1610년)에 재건이 완료되고, 이후 역대 왕들은 창덕궁에서 주로
), 어숙실(御肅室), 향대청(香大廳), 공신당(功臣堂), 칠사당(七祀堂) 등의 건물이 있다.
정전은 처음에 큰방 7실, 좌우에 딸린 방 2실이었으며 명종(明宗) 때 4실을 증축하여 큰방이 11실이 되었는데, 선조(宣祖) 25년(1592)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려 광해군(光海君) 즉위년(1608)에 다시 고쳐지었다. 그 후 영조
경복궁,창덕궁,창경궁,경희궁,덕수궁.이상 5개의 궁을 말한다.
ⅱ)‘궁궐’(宮闕)의 의미.
임금님이 나라 일을 보시던 처소가 정전(正殿)과 편전(便殿)들을 비롯한 건물들이다.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대신들이 모여 정사를 의논하던 장소나 하늘의 운행을 살피고 임금님의 학문을 돕고,궁을 지
경복궁의 교태전·강녕전 등 많은 건물을 철거하여 창덕궁으로 이건하였다.
창덕궁은 1610년 광해군때 정궁으로 사용한 후 부터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까지 258년 동안 역대 제왕이 정사를 보살펴 온 법궁 이었다. 창덕궁 안에는 가장 오래된 궁궐 정문인 돈화문, 신하들의 하례식이나 외국사